우아한형제들, 한명수
우아한형제들의 CCO 한명수 동문을 인터뷰했습니다. 한명수 동문은 2015년부터 배달의 민족과 함께하며 브랜드 특유의 간단하면서도 재치 있는 정체성을 확립해왔습니다. 쏟아지는 브랜드 속에서도 독보적인 개성을 유지하는 비결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한명수 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홍익시디 소식지〉 구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우아한형제들 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 관련 책임자로 일하는 창의노동관리자 회사원 아저씨입니다. 디자이너입니다.
한명수 님의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공대를 다니시다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전공으로 새로 진학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홍대 기계공학과 91학번이었어요. 한 달 다니다가 자퇴했어요. 재미없었으니까요. 눈앞에 화구통 들고 다니는 미대생들이 훨씬 멋져 보였고 어떻게 하면 저들처럼 될 수 있을까 알아보니 입시 미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홍대 앞 미술학원을 바로 등록했어요. 시험을 다시 봐서 미대에 왔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베끼는 건 어릴 때부터 잘해오던 거라 ‘암기식’ 그림은 할 만했어요. 92학번으로 새로 시작한 미대생 우쭐거리는 맛이 아주 행복하더라고요. 미대는 참 과제도 많고 썸탈 일도 많고 어깨너머 배울 친구도 많고 외국책 비디오 팔러 다니는 아저씨도 많고 벤치에서 담배 피는 사람도 많았어요.
시각디자인과 재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포장디자인 수업 D 맞았어요. ‘재밌는 것을 이토록 흥미 없게도 가르칠 수 있구나.’ 놀라운 시간이었죠.
대학생 당시 한명수 님이 하고 싶으셨던 디자인은 어떤 디자인이었는지, 현재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묵직하고 아티스트 작업 같은 그래픽을 잘하면 뭔가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이것저것 해보니 기질적으로 ‘만화 같은’ 유치하고 가벼운 느낌의 작업이 재밌었고 그런 성향들을 누르고 살 순 없더라고요. 심각한 화면(예를 들면 결제화면이나 사용자약관 안내, 주주총회 공지)을 나름 재밌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4학년 무렵에 종종 했었어요. 지금도 회사에서 일할 때 변함없이 그런 생각이 가득하긴 해요. 대학원 논문 쓸 때 만화 낙서 같은 걸 중간에 넣었는데 핀잔먹으면서도 빼진 않았네요.
만화나 가벼운 느낌의 작업에 대한 선호는 유년기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시각문화 실험집단 ‘진달래'에서 작업하셨던 포스터를 보면 지금의 유쾌함보단 진중함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한명수 님이 가진 디자인적 특성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 안에서 상상하거든요. 어렸을 때 ⟨보물섬⟩처럼 두꺼운 만화책을 봤고, 극화도 보긴 봤으나 장난스럽게 그린 만화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지금 그게 고스란히 남아서 심슨이나 스펀지밥 같은 걸 너무 좋아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약간의 콤플렉스예요. 디자인 어워드 같은 거 보면 그래픽이 되게 멋있잖아요. 이해는 못 하지만 되게 멋있고 해체주의적이고. 근데 저는 직관적이고 만화 같은 작업이 너무 재밌는데, 그런 요소로 그래픽을 만들면 유치하다는 피드백을 몇 번 받았거든요. 대학교 2, 3학년 때 학교 수업에서 되게 만화 같은 작업을 했어요. 사람이 시옷처럼 보이는 모습을 글자로 그려버렸어요. 근데 조형적으로 만들어야지 이런 건 유치하다고 까였어요. 약간 창피하기도 하고 ‘깊이 있는 디자인을 해야 하나?’ 같은 생각들이 계속 충돌했어요.
그래서 누가 볼 때는 진중해 보이는 것처럼 연출해요. 일단 이 정도까지는 해놓고 본격적으로 작업할 때 망가뜨리는 걸 하는 거죠. 저는 기본적으로 재밌고 사람들과 쉽게 하는 작업을 되게 좋아해요. 근데 그런 작업을 고스란히 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선입견 같은 게 있죠. 거기에 맞춰서 형식을 전부 가다듬다 보면 부자연스러워지는 거예요. 상대가 원하는 것도 맞춰주고 제가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니까 생기는 갈등이 결국에는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지금까지 9개의 기업에서 UX, 브랜딩 분야 디자이너로 근무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0년대에는 웹 디자이너로도 활동하셨는데요, 우아한형제들의 CCO로 근무하시기 이전의 한명수 님의 삶이 궁금합니다.
일만 죽어라 한 것 같기도 한데, 일의 의미는 계속 바뀐 것 같아요. 밥벌이의 기술이면서도 누군가에겐 창의적 삶의 이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IT 트렌드의 첨단 막노동 직군이기도 하고 갑 님을 위한 을·병·정·무·기·경·신 용역도 즐겁게 했었지요. 큰 조직의 책임자가 되면서부터는 여러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징그럽고 속 터지는 일들을 아무렇지 않은 듯하기도 했어요. ‘구조조정’ 같은 것이랄까요. 괴이한 우두머리 보스에게 밉보여 입사 백일만에 쫓겨난 적도 있는데 그 덕에 소신과 눈치가 함께 동반성장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일터는 험악하고 의사결정권자의 변덕은 매번 달라져도 디자인 일하는 것은 항상 재밌어요.
긴 시간 동안 디자인 노동을 하신 만큼 작업이 거절당하거나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작업이 부정 혹은 거절당해도 좌절하지 않는 마음은 어떻게 키우는 걸까요?
그렇죠. 이게 프로가 하는 일이죠. 그래서 작업을 다양하게 많이 하는 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디자이너가 선택지를 만들잖아요. ‘디자이너가 주체가 될 수 있나?’라고 하면 사실 그렇게 말하기는 조금 어려워요. 디자인은 결정하는 사람이 만들거든요. 어떻게 보면 디자이너는 결정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게끔 그 사람의 마음과 안목, 분위기를 잘 컨트롤하는 기술자여야 한다는 거예요. 거절당할 거를 미리 아는 거죠.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잘 연구하고 예측하고 관찰한 다음에 선택지를 만들어요. 그럼 보는 사람은 고르는 맛이 있거든요.
모든 디자인은 결정권자를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일이죠. 그리고 그 사람이 선택하지 않은 거는 내 거예요. 저는 그때 의미가 있어요. ‘이 사람이 선택 안 했구나. 다 내 거지롱.’ 이거죠. 선택하지 않은 것들도 어차피 최선을 다한 거기 때문에 다른 데다 써먹으면 돼요. 그래서 저는 시안을 만들 때 거절당하는 게 일단 기본이에요. 물론 저도 이전에는 속상한 적이 되게 많았어요. 그렇지만 얼마 후에 ‘평생 해야 할 일인데 왜 이렇게 속상해하면서 일하지?’, ‘내가 여기서 속상해하면 지는 거구나. 오히려 이 사람이 감동할 수 있는 거를 더 많이 만들고 거절당해도 다 내 거지 뭐. 이래서 내가 부자 되는 거지.’ 이런 생각을 굉장히 빨리했던 것 같아요.
혹시 일을 하시면서 슬럼프가 오신 적은 없으신지, 있으시다면 극복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슬럼프는 오죠. 사람이라는 게 기계가 아닌 이상 뭘 하다 보면 바닥이 보일 때가 있어요. 근데 바닥이 보여야 그때 정신을 차리거든요. 이게 샘물을 길어 올리는 것과 같은데, 열심히 일하다 보면 반복된 것들을 끄집어내서 언젠가 소진되거든요. 그걸 경험해야 ‘잠깐만, 슬럼프가 이런 식으로 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이 생겨요. 저 같은 경우엔 ‘슬럼프가 올 테니까 미리 곳간을 준비해 두자.’라는 생각을 한 거죠. 작업을 할 때 이상한 걸 계속 만드는 것이 슬럼프에 안 빠지기 위한 하나의 비책이에요. 작업을 하면서 그 한정된 시간에 실험을 하는 거죠. 디자인은 결국엔 누군가가 선택하니까 선택이 안 될 것을 일부러 만드는 습관이에요. 일하려면 에너지를 써야 하고 대부분 빨리빨리 해달라고 하는데, 그때 옛날에 망쳤던 것들이 다 보물이 돼요.
‘나는 슬럼프를 늘 준비해 두겠어.’ 뭐 약간 그런 거죠. 그래서 저도 ‘프로들은 어떻게 슬럼프 없이, 끊임없이 저렇게 생산할까.’ 보면 쥐어 짜내는 기술이 되게 좋구나 싶어요. 쥐어 짜내면 계속 나오는데 그러려면 방금 얘기한 것처럼 보물 상자가 있어야 해요. 프로들은 아이디어가 안 떠오른다고 핀터레스트 들어가서 고르지 않거든요. 본인이 샘이 마르지 않도록 습관을 잘 만들면 돼요.
그렇다면 현재는 기업의 CCO(Chief Creative Officer)로서 어떤 업무를 하시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회사에서 만들어지는 온갖 시각물의 때깔을 책임지고요. 그 때깔은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보이면서 생명체처럼 진화해야 하는데 워낙 여러 사람이 만들다 보니 업무 시스템(눈에 보이지 않는)을 건강하게 만드는 게 핵심 업무예요. 가이드나 매뉴얼로는 커버가 다 되지 않기 때문에 ‘영감을 주고받는’ 무엇인가의 총체적 몸부림을 한다고 해야 할까요. 사업과 기술과 마케팅과 디자인의 종합 비즈니스 예술이 막히지 않고 잘 흐르게 하려면 이메일을 쓸 때나 슬랙 메신저에서 스마일 이모티콘과 하트 이모티콘을 과도하게 날려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비누를 깎아 캐릭터를 만들고, 손글씨로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 하나의 일관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풀어내는 다양한 방식에서 배달의 민족의 ‘배민다움’이 느껴집니다. 고정관념을 깨는 독창적인 생각을 디자인에 반영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브랜딩’이란 말을 써가며 일하는 프로라면 그 일의 근본적 중심이 남들의 좋아 보이는 것들을 따라 하지 않는 태도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해요. 트렌드라는 강력한 흐름을 거스르면서 나다운 창작어법을 만드는 일이 꽤 만만치 않은 일인데, 쉽게 영향받는 것들을 버리는 것이 시작이에요. 버리다 보면 제약조건이 커지고, 제약조건이 커질수록 창의성은 뾰족하고 날카로워지죠.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굳이 일부러 어려운 방법으로 해볼까? 삽질하다 보면 남들이 놓친 것들을 줍줍하게 되는 일들이 생깁니다.
배달의 민족 특유의 B급 감성과 유머, 유쾌함은 브랜딩 초반 단계부터 주력한 성격인지 궁금합니다.
브랜딩은 서비스 주인의 철학과 취향, 안목과 의지의 씨앗으로 자라나요. 2010년에 서비스가 탄생했을 때부터 지금의 느낌이 심어져 있었고 저는 이후 2015년부터 함께하면서 그 느낌을 계승하고 진화시키고 있긴 한데… 그 느낌이 나쁘지 않은 인격적 특성이라 생각해요. 수많은 브랜드 중에 이런 색깔도 살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명수 님께서 이전에 진행하셨던 강연에서 ‘좋은 디자인은 모든 것을 담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하나만 선택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나머지를 덜어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게 인상 깊었어요. 디자인할 때 자신만의 기준점과 본질을 파악하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중요한 거를 남기려면 일단 마감에 쫓겨야지 보이는 것 같아요. 시간을 넉넉하게 주거나 생각이 너무 많으면 에너지가 있는 한 모든 것을 하고 싶거든요. 근데 마감 시간에 쫓기면 ‘중요한 것만 해야지.’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중요한 걸 안 하면 욕먹잖아요. 그러면 제일 중요한 거 하나만 딱 하고 끝내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데 그때 진짜 엄청나게 머리가 핑핑 돌죠. ‘중요한 게 뭐지?’, ‘어차피 제약 조건이 너무 심해. 중요한 것만 하나만 잘하면 끝날 것 같아.’라고 생각하며 약간의 쫓기는 심정. 그 순간이 진짜 기적의 순간이에요.
그래서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한 30분 자다 일어나서 중요한 게 뭔지 보고 싹 다 버리고, ‘이것만 해야겠구나.’ 해서 새로 딱 끄집어내고 끝낸 경험이 종종 있어요. 그때 비로소 내 몸속에 있는 세포가 알아요. 약간 주저할 수도 있죠. ‘이렇게 해도 해도 되나?’라는 느낌이 있어요. 그 느낌의 정도를 알아야 해요. 그럼 상대방이 교감해줘요. “중요한 것만 했네.”, “이것만 조금 보완해 주세요.”라고 하는 거죠.
계속해서 틀에 갇히지 않는 사고를 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분수를 아는 것? 내가 어떤 프레임에 빠져있는지를 알기만 해도 빠져나올 수 있을 텐데 편하고 안정된 상황에서는 절대 그 틀이 안보이긴 하죠. 틀을 알아도 나올 이유도 없고요. 그래서 불편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내 분수를 깨닫고 ‘이게 최선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익숙한 환경이 뒤집힐 때나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겁먹지 않으려고 해요.
겁먹지 않기 위해 속으로 외칠만한 주문 하나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원래 되게 내성적이고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매우 눌려 살았어요. 세 사람 이상 앞에서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게 세상 제일 두려웠어요. 그리고 선생님 또는 사회적으로 뭔가 권위가 있어 보이는 대상 앞에서 무조건 쪼그라들어요. 콤플렉스도 많고 뭔가 혼날 것 같고 그러니까 맨날 어디 가면 뒤에 숨어 있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심장이 덜컹거리고. 그래서 앞에 나가서 자기 작업 설명하라고 그러면 전날 잠이 안 왔어요. 그걸 극복하는 데 한 10년이 걸렸어요. 되게 오래 걸렸는데, 그동안 외운 주문 같은 게 있었어요.
‘인간이잖아.’라는 말이에요. 이게 좀 어려운 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람 이름 뒤에 뭔가를 붙이잖아요. 부장님, 이사님, 교수님 같은 호칭을요. 그런데 이제 제가 누군가를 부를 때 겉으로는 “교수님” 이렇게 불러도 속으로는 아저씨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홍길동 교수님을 부르지만, 속으로는 ‘홍길동 아저씨’라고 생각하는 거죠. 결국 저와 같은 인간일 뿐이라고 주문을 외우는 거예요. 그 사람 뒤에 저를 겁주는 것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발표해야지.’라고 하면 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는 ‘그냥 앞에 나가서 비밀 얘기 하나 하고 오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기업의 서체를 사용한 마케팅이 대중들에게 브랜드를 각인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한나체, 주아체, 을지로체 등 독립된 전용 서체를 만들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간단히 들을 수 있을까요?
현대카드도 전용 서체가 있고 애플도 전용 서체가 있죠. 브랜딩 효과가 강한 기업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어요. 대신 그 형태와 방식이 다르죠. 못생긴 투박함, 우리 주변의 흔한 시각 원천(옛 간판), 누구나 쓸 수 있는 저작권 배포,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체가 있는 사람의 이름을 딴 작명 등 서체 브랜딩의 일반적인 방식을 살짝 비켜나간 특징이 있어요. 거창하고 세련된 의미 포장도 안 하려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무거워지는 경향이 생기면 다시 가볍게 돌아가려 합니다. ‘놀이’처럼요. 기업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애정과 의지로 시작된 일이니, 기업이 살아있는 한 계속 만들어지지 않을까 해요. 아이디어는 탑다운이고 실행은 민주적이며(하고 싶은 사람이 함) 산돌이 기술적인 도움을 10년째 주고 있습니다. 기기에서 서체 고를 때 배달의민족000체는 공짜인데도 쓸 만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충분히 행복합니다.
배달의민족이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카피라이팅에 굉장히 주력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혹시 가장 인상 깊으셨던 문장이 있을까요?
배민문방구 스테디셀러인 2,000원짜리 때수건에 쓰여있는 카피가 한결같이 볼 때마다 참 좋아요. ‘다 때가 있다.’
배달의 민족 앱을 보면 UX 라이팅에 있어서 배민의 개성인 재미있고 위트있는 말투는 중요한 장치나 위치에서만 드러나고, 다른 정보들은 쉽고 분명하게 전달해주는 듯했어요. 라이팅 이외에도 거의 전 연령층이 사용할 만큼 대중화된 브랜드를 구축할 때 중요시하는 요소가 있을까요?
저희 회사의 서비스 철학이자 원리가 있어요. ‘쉽고, 명확하고, 위트 있게’ 세 개예요. 이 세 가지는 회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김봉진 대표님이 원칙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회사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기준 삼아 이미지나 텍스트를 검열하죠. UX 라이팅 역시 우리들의 어법으로 정해진 거죠. 예를 들어 ‘취급 주의’ 이런 말이 있어요. ‘취급 주의’라고 쓰고 싶은데 이거는 우리 회사에서 쓰지 않을 것 같은 단어라는 걸 사람들이 다 알아요. 왜냐하면 쉽지도 않고 명확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잖아요. 상대방 관점에서 친근하게 느낄 만한 건 ‘살살 다뤄주세요.’ 아니면 ‘조심히 다루세요.’ 같은 말이겠죠. 구어체 같은 느낌, 옆 사람이나 친구한테 말하는 느낌이 회사에 전반적으로 다 깔려 있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재미있게 말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매번 해요. 이게 원칙 같은 거라서 매뉴얼로 있는 게 아니라 회사 공간에도 카피라이팅이 시트지로 막 붙어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어요.
한명수 님이 학부 시절 하셨던 활동이나 경험 중 지금의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경험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대학교 3학년 때 학교 앞 식당에서 점심밥 먹고 계산하고 나가려는데 제 옆, 옆, 옆에 혼자 식사하시던 교수님께서 제 밥값까지 미리 계산하고 가셨으니 그냥 가라고 계산대에서 얘기해줄 때 엄청난 감동을 느꼈어요. 나중에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예비 디자이너들에게 이것만은 학부생 때 해보거나 즐겨보라고 권유하고 싶으신 활동이 있을까요?
선생님이 과제 내주시면 그냥 잘해 가지 말고, 미친 척 세상 어이없는 황당 작렬 끝장 작업도 한 번쯤 해보길 바라요. 누군가의 기대치와 예측범위를 과도하게 훌쩍 뛰어넘는 뭔가를 했을 때 상대방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세요. 기적이 일어나는 확률이 살짝 늘어나면 인생이 좀 풍성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현 시점에서 한명수 님의 다음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이 인터뷰를 빨리 끝내고 아직 읽지 못한 이메일 스물세 통을 읽어야 해요. 그중 누군가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답장을 써줘야 하나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