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그래픽 디자이너, 장성환
203인포그래픽연구소의 대표이자 홍대앞 동네 잡지 『스트리트H』의 공동 발행인 장성환 동문을 인터뷰했습니다. 장성환 동문은 국내 인포그래픽 분야를 선도하며, 『스트리트H』를 통해 홍대앞의 공간과 기억을 보존하는 디자이너입니다. 각종 통계자료 및 문서자료를 효과적인 디자인으로 시각화하는 인포그래픽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장성환 동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학사,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석사를 전공했습니다. 학부 1학년 때부터 2년간의 홍대학보사(현 홍대신문사) 생활을 통해 본격적인 미디어 제작을 처음 경험했어요. 그 경험이 학부를 졸업한 이후 회사를 선택하는 데도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13년간 3곳의 직장 생활을 거치고 ‘홍대앞’에서 창업해 현재는 203인포그래픽연구소 대표이자 홍대앞 동네 잡지 『스트리트H』 공동 발행인입니다.
장성환 님의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시각디자인과 재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 혹은 교수님이 있으시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대학교 2학년, 권명광 교수님의 일러스트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 유명인 캐리커처를 그리는 과제를 내주셨어요. 그때는 일러스트 마카가 수입되던 초기 시절이었는데, 저는 마릴린 먼로를 12색 모나미 사인펜과 스킨톤 마커 몇 개만을 이용해 각진 형태로 묘사했어요. 특히 입술을 보라색으로 칠했는데, 그때 권 교수님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고 물으시며 칭찬을 해 주셨어요.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잖아요? 그 뒤로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마지막 학기의 논문 지도를 권명광 교수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당시 매킨토시와 GUI 등에 푹 빠져있던 저는 「비문자적 정보 전달 체계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논문을 작성했어요. 권 교수님께서 처음에는 주제가 너무 낯설다며 저더러 알아서 쓰라고 하셨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그리고 안상수 교수님이 정말 기억에 남아요. 2학년 때 안상수 교수님의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처음 들었고, 이를 계기로 군대 제대 이후 안그라픽스에서 취재와 일러스트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어요. 안상수 교수님은 홍대학보사 선배님이시기도 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당시 안그라픽스에서 〈안체〉를 건축설계용 프로그램인 오토캐드*로 디자인하는 것을 보고 저도 컴퓨터를 구입해서 따라 만들어 보며, 제 서체를 디자인해서 과제에 활용하기도 했어요.
* 오토캐드(AutoCAD): 미국의 오토데스크(Auto-Desk)사에서 개발한 컴퓨터 이용 설계(CAD) 소프트웨어의 상품명으로, 컴퓨터를 이용하여 정교하고 복잡한 설계 도면을 모델링하는 데 쓰임.
대학 시절부터 인포그래픽 디자인을 줄곧 해오셨나요? 인포그래픽에 관심을 두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축하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가 “당시에는 모르지만, 찍어놓은 점을 나중에 돌아보면 선으로 이어진다.”라고 말했어요. 스티브 잡스는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와 캘리그래피 수업을 별생각 없이 들었지만, 매킨토시(Macintosh)를 제작할 때 당시 경험을 통해 서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여러 가지의 서체를 탑재했다고 해요. 그 시절 IBM의 호환형 컴퓨터에는 비트맵 서체 하나밖에 없었던 반면, 애플의 매킨토시에는 뉴욕, 시카고, 보스턴 등 여러 개의 서체가 있었던 거예요. 이런 식으로 당시에는 의도하지 않고 찍은 점이 나중에 의미 있는 선으로 이어지게 되는 거죠.
제게도 이런 경험이 있어요. 저의 점은 연합뉴스라는 언론사의 그래픽 뉴스팀에서 일했고, 동아일보사로 옮겨 여러 잡지를 디자인했고, 특히 과학동아에서 오래 일했던 것들이죠. 이 점들이 인포그래픽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또 홍대학보사에서의 경험은 디자인이랑은 전혀 무관했어요. 기획, 취재, 원고 쓰기. 하지만 그때의 콘텐츠를 생산한 과정과 경험이 인포그래픽의 중요한 시작이 된 것처럼요. 뭐든 갑자기 생기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앞날을 확실히 알고 걸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만 저는 걸어가면서 제가 미디어를 좋아한다는 점과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부터 참여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현재 홍대신문사인 ‘홍대학보사’에서 활동하시며 기획과 취재, 글쓰기 경험을 쌓으셨어요. 당시 신문사에 지원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저는 미대에 올 생각을 하기 전에는 국어국문학과나 사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그만큼 역사에 흥미가 많았고,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거든요. 이런 성향 때문에 미대 진학 후 자연스럽게 홍대학보사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대학생 때에는 학교 수업 외에도 동아리가 중요한데, 디자인 관련 소모임에서 활동했던 친구들과는 굉장히 다른 선택을 한 거죠. 그때 2년간 홍대학보사에서 디자이너가 아니라 기획과 취재, 그리고 원고지에 기사를 작성하는 일을 담당했어요. 조선일보에 직접 가서 금속활자로 활판을 짜 학보를 인쇄하기도 했고요. 제가 활동할 당시 홍대학보사에서는 일주일에 하나씩 신문을 발행했는데, 과 동기들이 “너는 과제 하기도 바쁜데 뭐 그런 거를 하냐.”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학보를 만드는 게 좋았어요. 나중에 돌아보니 학보사 활동이 정말 귀중한, 앞날에 영향을 미치는 경험이었더라고요. 이렇게 홍대학보사에서의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언론계로 방향이 이어졌죠.
장성환 님의 대학 시절과 비교했을 때 요즘 홍대앞의 분위기와 문화는 무엇이 다른지 궁금합니다.
답변하기에 앞서, 우선 『스트리트 H』에서는 ‘홍대 앞’이 아니라 ‘홍대앞’으로 표기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이유는 ‘홍대앞’을 단순히 학교 앞이 아닌 홍대에서 비롯된 문화 공간을 일컫는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즉 ‘홍대앞'이라는 고유명사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답변으로 돌아오자면, 가장 큰 차이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홍대앞’에 프랜차이즈들이 많고, 코로나 이후로는 공실률이 엄청나게 높아졌잖아요. 그런데 제가 학생일 때는 서교동, 동교동, 합정동 언저리까지 반지하, 지하실, 차고 등 정말 적은 비용으로 작업실을 얻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술집이나 밥집들이 주로 있었고 프랜차이즈들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작업실이 아지트처럼 쓰였죠. 저도 친구들과 작업실을 아지트로 사용하곤 했어요. 국산 음향기기 제작사인 천일사의 독수리표 전축에다가 갓 발매된 신촌 블루스 LP를 얹어놓고, 함께 소주를 마시며 개똥철학일지도 모를 얘기들을 했어요. 가구도 카페에서 버린 것들을 가져다가 까맣게 락카칠해서 썼고요. 정돈되지 않은, 저희 마음대로 하는 날 것의 무언가가 있었죠.
또 당시에는 홍대에 출판사와 편집자, 디자인 회사, 디자이너들 그리고 음악가들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았거든요. 술 마시다 옆 테이블의 편집자나 인디 음악가들과 합석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어울렸어요. 안상수 교수님이 막 전임 교수님이 되셨을 때는 〈미르체〉로 홍대의 ‘발전소’라는 클럽의 간판을 직접 디자인 해주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홍대의 교수와 학생, 디자이너들끼리 ‘홍대앞’에서 어울리는 분위기가 조성됐었어요. 그래서 ‘홍대앞’이 다양하고 생산적이면서도 즐거웠죠.
*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도심 인근의 낙후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
여러 인포그래픽 디자인을 진행해 오신 만큼 기억에 남는 인포그래픽 작업도 있으실 텐데, 그중에 가장 어려웠거나 힘들었던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나요?
여러 해 전에 통계청과 작업했던 프로젝트의 난이도가 가장 높았어요.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경제 용어가 수두룩했죠. 내용이 이해가 안 돼 애를 먹었지만, 반드시 이해해야 인포그래픽 작업이 가능했기에 경제학을 전공한 분을 자문으로 모시고 연구했어요. 결국 경제 용어들을 다 이해하고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모션 인포그래픽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203인포그래픽연구소에서는 자료수집 전에 마인드맵 툴을 가지고 기획 개요(그림 참조)를 먼저 작성하는데, 저희는 이것을 나침판이라고 부릅니다. 기획 개요가 확고해야 작업을 진행하는 도중에 혼란스러워지더라도 제대로 중심을 잡고 방향을 유지할 수 있어요. 여러분도 과제를 할 때 레퍼런스부터 볼 것이 아니라 기획 개요 마인드맵부터 작성하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이해시킬 때 글과 이미지, 각각의 표현 방식이 가진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소통의 오차를 줄이고 싶을 때는 인포그래픽 작업에서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까요?
김광균의 「추일서정」라는 유명한 시에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라는 구절이 있어요. 이 문장은 시각적인 심상이 두드러지지만, 이걸 그래픽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또 모든 한국인이 이 구절을 읽을 수 있더라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해요. 글로 된 정보의 어려움이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다른 나라의 공항에 방문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언어와 문자가 낯설고 어려운 곳에서도 화장실 찾는 건 비교적 아주 쉬워요. 화장실 픽토그램 때문이죠. 언어는 후천적으로 배워야 하며 의미가 깊어질수록 어려운 데 반해, 그림은 배우지 않아도 이해가 되며 직관적이고 즉각적이에요. 그렇기에 인포그래픽에서는 이러한 강점을 살려 정보적 약자도 이해할 수 있게끔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저희 회사의 신념이 ‘직관적 이해 만들기(Create Intuitive Understanding)’예요. 단순히 미적인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글과 차별화되는 비주얼 스토리텔링의 힘을 통해 정보를 쉽고 매력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장성환 님께서는 다양한 곳에서 인포그래픽 강연을 하셨고, 현재도 워크숍을 진행하고 계세요. 이렇게 국내외를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지식을 나누는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시게 된 동기가 궁금해요.
어느 날 인터넷에서 우연히 홍콩 영어신문 SCMP(South China Morning Post)의 인포그래픽 팀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 3명이 홍콩의 변두리 카페에서 인포그래픽 경험을 나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저희도 직접 제작한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가지고 그 행사에 방문했고, 발표가 끝나고 발표자들과 대화하고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디자이너들끼리 협업할 기회가 있으면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눴죠.
그러다 2018년 4월, SND HK(Society for News Design Hong Kong)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된다면서 발표자로 와달라는 초대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해외의 저명한 언론사들이 참석하는 자리에 동네 잡지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아 거절했었는데, 초대한 사람이 저희의 작업에 부족함이 없다며 꼭 참여해 달라고 했어요. 정말 감사했죠.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당시 다른 발표자들은 모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반면, 저는 발표를 자유롭게 할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던 거예요. 무척 난감했던 그때, 키워드 위주로 즉석에서 메모를 만들어 빠르게 발표를 준비했고 난생처음으로 영어 발표를 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발표가 끝난 후 여러 나라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질문해 주는 것에 큰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선유 도서관에서 진행한 초등학교 3·4학년 대상 워크숍을 통해서도 뿌듯함을 느끼고 있어요. 저희의 초반 작업 과정에 해당하는, 마인드맵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죠. 그것만 해도 아이들이 많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생각을 정리하고 구조화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히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인포그래픽은 디자인 이전에,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죠.
디자이너들이 갖추어야 할 기획과 분석 역량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대학 강의를 진행할 때 보면, 학생들이 구글 이미지나 핀터레스트에서 시각적 템플릿 검색을 우선으로 하는 게 안타까워요. 저는 작업 초반에는 학생들에게 구글에서 글로 된 정보 검색만 하고 이미지 검색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기획을 먼저 구조화한 후에 그에 해당하는 정보를 찾아내 식별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연결했을 때 어떤 콘텐츠가 혹은 어떤 의미가 탄생할지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해요. 실무적인 디자인도 해야 하지만 이러한 기획이 먼저 진행돼야 좋은 디자인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디자이너들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관련 경험은 많지만, 글 쓰는 것과 관련된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어요. 저는 일단 긴 글로 기획서를 쓰기 전에 마인드맵 툴을 활용하여 생각을 정리하면서 텍스트 정보를 구조화하는 것을 제안해요. 몇 번 시도한 후에 글이 정리되면 본격적인 시각화 작업을 시작하는 거예요. 다만 마인드맵은 이미지가 아니라 글로 정리하는 방식이라 간혹 클라이언트와 소통할 때 오류가 생길 수 있는데, 이럴 때는 저희 203인포그래픽연구소가 고안한 내러티브 다이어그램(Narrative Diagram)을 사용하니 효과적으로 소통이 되더라고요. 내러티브 다이어그램은 시각적 이미지를 구조화하는 방법으로, 마인드맵을 다시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는 것을 의미해요. 정보 파악에 있어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해지는 방법이죠. 여러분들도 마인드맵이나 내러티브 다이어그램 등을 꼭 쓰시길 바라요. 이 방법을 사용하면 작업과 인생이 달라질 정도로 큰 변화가 생길 겁니다.
연합뉴스 그래픽 뉴스팀에서 일하셨던 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요.
연합뉴스에서 그래픽 뉴스팀을 창설할 때, 제가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제의가 와서 이직을 했습니다. 당시 국내 언론사들은 이제 막 IBM PC로 기사를 타이핑하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AP, AFP, Reuters와 같은 해외 뉴스 통신사에서 애플 매킨토시로 제작된 그래픽 뉴스가 들어오게 된 거예요. 연합뉴스에는 컴퓨터로 디자인을 한 경험, 즉 매킨토시를 써본 사람이 없어서 제가 가게 된 것이었죠. 저는 그때부터 해외 뉴스 통신사의 그래픽 뉴스를 매일 접하고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맡았어요. 그리고 그 수준에 걸맞은 연합뉴스만의 한글 그래픽 뉴스를 만들어야 했죠. 계속 보다 보니 나중에는 눈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3년 반 동안 그렇게 국내 그래픽 뉴스를 만들어 본 것은 정말 큰 기회였죠. 그때 축적된 경험이 이후 저를 또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 주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포그래픽에 사용되는 일러스트는 일반적인 일러스트와 고려해야 할 부분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부분에 가장 초점을 두고 일러스트를 제작하시나요?
저는 대학교 2학년 때는 학보사에 실릴 만화를 그렸고, 안그라픽스에서 일할 때는 손으로 그래픽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했어요. 당시 일러스트는 본문보다는 하위 위계에 있었고, 본문을 위해 만들어지곤 했습니다. 정보 전달보다 시각적으로 보기 좋고 텍스트에 분위기를 더하는 정도의 역할이 요구되었죠.
반면 인포그래픽 속 그래픽 일러스트는 우리가 정보를 기획하고 이를 전제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아름답거나 장식적으로 기능하는 것에 앞서 독립적인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해요. 물론 그림책처럼 서정적인 일러스트도 인포그래픽의 주제나 대상에 따라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일러스트에 비해 인포그래픽의 일러스트에서 중요한 것은 그림만 보고 정보가 전달되느냐의 여부입니다. 이 점에서 기존의 미디어에 사용되는 일러스트와 인포그래픽 속 그래픽의 차이가 생깁니다. 장식을 넘어서 우리가 기획한 의도가 전달되는 일러스트여야 해요.
『과학동아』에서 디렉터로 근무하셨다고 들었어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과학동아』에서 근무하기 전, 동아일보 시사 주간지의 창간 디렉터로 일을 시작했어요. 시사 주간지를 무사히 창간하고 나서 『과학동아』를 맡게 된 거였죠. 과학을 전공한, 함께 일했던 기자 후배들에게 “나는 학교에서 과학과 수학을 재미없게 배워서 그냥 포기했다. 이번에는 당신들이 내게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 같이 멋진 과학잡지를 만들어보자.”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후배들이 과외 선생님처럼 과학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줘서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작업하다 보니 물리와 화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인지라 어떻게 시각화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연합뉴스에서 일했을 때는 한 컷짜리 그래픽 뉴스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매우 큰 규모의 인포그래픽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 거죠. 특히 기억나는 건 한때 게놈* 프로젝트가 화제였을 때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일이에요. 적절한 인포그래픽을 만들기 위해서는 게놈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했어요. 동료 기자들, 외부 일러스트레이터와 머리를 맞대고 개념부터 공부하며 시각화를 진행했죠. 이때 작업보다 콘텐츠 대한 이해를 선행했던 것이 정말 값진 경험이었어요. 『과학동아』는 과학 분야라는 특성 탓인지 동아일보 내에서 디자이너들이 다 피하고 싶어 하는 매체였는데, 오히려 저에게는 무척 재미있는 곳이었어요.
* 게놈(genome): 유전체, 한 개체의 모든 유전정보.
2009년 6월부터 시작된 홍대앞 동네 잡지 『스트리트 H』를 창간하게 된 계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2003년 동아일보를 퇴사한 후, 홍대 놀이터 근처에 사무실을 얻고 203인포그래픽연구소를 창업했습니다. 회사라는 울타리의 안정감도 좋았지만, 주체적으로 다양한 일을 하고 싶었던 게 그 이유였죠. 맨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해서 어려운 점도 많았고 창업을 포기할까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다행히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받아 진행한 프로젝트가 제게는 크게 와닿거나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언론사에서의 작업이 제게 더 잘 맞았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미국의 서체 회사 이미그레(Emigre)의 잡지 발행 계기를 소개하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본업인 서체 디자인의 지난함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서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또 이미그레는 잡지를 만들며 성취감을 얻은 동시에 회사의 이름도 더 잘 알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은 후 저도 자연스레 잡지를 펴내는 것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러다가 『스트리트 H』를 창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현 『스트리트 H』의 공동 발행인 겸 편집장이 뉴욕에서 1년간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돌아오며, 한 출판사와 『카페 탐험가, 뉴욕에서 홍대까지』라는 책을 쓰기로 계약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죠. 책을 쓰기 위해 함께 ‘홍대앞’의 의미 있는 카페들을 취재했었는데, 정보나 사진 등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거예요. 안상수 교수님과 국민대 금누리 교수님이 함께 창업한, 한국 최초의 전자 카페인 ‘electronic cafe’를 취재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안상수 교수님께 카페 사진을 요청하니 직접 찍으신 사진이 아니라 PC 잡지에 게재되었던 것을 반복 복사한 듯한 저해상도 이미지 파일을 보내주셨어요. 그때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았어요. ‘홍대 미대와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홍대앞’ 공간과 기억들이 이렇게 휘발되어 버리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우리가 직접 ‘홍대앞’을 기록해 보자고 결심하고, 2009년 6월 홍대앞 동네 잡지 『스트리트 H』 창간 첫 호를 발행했어요. 무가지로 발행한, 기록의 의미가 앞서는 작업이었죠. 올해로는 15년 차가 되었네요. 2015년부터는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매월 1종씩 제작해 잡지에 부록처럼 넣었는데, 제작한 인포그래픽 포스터도 어느덧 100종이 넘었습니다.
결국 창업 당시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생산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을 『스트리트 H』로 이룬 셈이네요.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도, 시작하고 난 후 계속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한번 시작하면 버티고 축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이룰 수 있어요. 그러니 스스로 재미있고 의미 있는 분야, 작업을 선택하고 시작해야 해요. 축적의 시간이 노동이 아니라 기쁨이 될 수 있게끔 말이에요.
홍익시디 후배들에게 소개하고 싶으신 작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018년 경향신문과 함께 작업했던 ‘평양냉면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국내 언론사가 외부와 협업해 인포그래픽을 작업하는 경우는 잘 없어요. 신문 1면 전체를 인포그래픽으로 채우는 것도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글과 기사를 쓰는 일이 주된 언론사는 이런 부분에 보수적인데도, 당시 경향신문의 담당팀은 제가 제안한 내용들을 매우 긍정적으로 수용해 주었습니다. 그 덕에 평양냉면이라는 주제와 조사 방법도 제가 제안할 수 있었고, 인포그래픽 제목도 직접 작성했습니다. 멋진 협업이 이뤄진 것이죠.
또한 평양냉면 프로젝트는 신문 지면 작업과 더불어 경향신문 사이트에 게재될 인터랙티브 작업을 병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경향신문 사이트에서 활성화돼 작동하고 있습니다.
장성환 님께서 추구하시는 이상적인 인포그래픽의 방향성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어요.
인포그래픽이라는 건 직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포그래픽은 특정 정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인포그래픽을 통해 그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고, 여행을 가고 싶다거나 요가를 해봐야겠다거나 등의 직접적인 행동과 실천으로 옮기게 만드는 것이에요.
‘세상 모든 지식을 시각적으로 지혜화하는 것’이 저희 스튜디오의 야망입니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해 볼게요. 지식은 공부하고 시험을 본 이후에는 잊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것들이에요. 아연의 원소 기호를 모른다고 해서 사는 게 힘들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지혜는 살면서 꼭 필요한 불변의 법칙이자 모르면 인생이 힘들어지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날카로운 물체에는 베일 수 있다거나 뜨거운 것을 만지면 화상을 입는다거나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들 말이죠.
대학 시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대학생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졸업하기 전 대학 시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규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있어야 해요. 거기에 덧붙여 나는 그것을 왜 하고 싶은지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미술대학에 입학했으니 목표를 다 이루었다며 저학년 때는 자유를 만끽하자는 분위기가 생기기도 하죠. 그런데 제가 다른 대학의 졸업 예정자, 즉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의 입사 면접을 본 적이 있는데,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 학생들은 불성실하지도 않았고 정말 열심히 학부 생활을 했던 친구들이었는데도요. 본인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으면 졸업할 때쯤 정말 힘들어져요. 단순히 ‘연봉이 높으니까,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다.’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중요합니다. 대기업 정년퇴직률은 0%에 수렴한다고 해요. 하나의 일을 계속할 수 없으니, 평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또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는 ‘왜?’라는 질문을 동반해야 하고요.
학생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걸 해야 버티고 성공하거든요.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버티는 건 너무 힘들잖아요. 졸업하기 전에 자기규정을 확실히 하고, 미래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정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장성환 님의 디자인 인생에 전환점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디자인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하면 직장 다닐 때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제가 어렸을 때는 책의 종류가 많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저는 책 읽는 걸 좋아했고, 얼마 없었던 책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죠. 자연스레 독서 훈련이 되면서 머릿속에 여러 지식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또 글을 많이 썼고, 교회 회지와 독서회지부터 홍대학보 같은 것들을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졸업 후 직장에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바탕으로 레이아웃을 짜고 디자인하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저는 누군가 만든 것에 맞춰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획을 하고 싶었거든요. 이후 직장을 관두고 인포그래픽을 만드는 지금의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으니, 직장에서의 경험이 제 디자인 인생의 전환점이 아닐까요?
전 세계 여러 도시의 디자인 풍경과 서점들을 사랑하고 실제로 자주 방문하신다고 알고 있어요. 장성환 님이 생각하는 서점의 매력을 여쭤보고 싶어요.
학교 다닐 때 여유롭지 않은 탓에 디자인 일을 하면서도 미술학원에서 강사 일을 했어요. 아는 선배가 운영하던 학원이었는데, 작업실에 책꽂이와 책이 매우 많았어요. 그걸 보면서 ‘나는 언제 저런 책들을 가질 수 있을까?’ 하며 부러워했어요. 그때 당시 생겼던 책에 대한 집착이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 사무실에도 책장과 책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서점을 좋아하고 자주 방문합니다. 해외에서도 서점을 많이 방문했는데, 한국과는 다르게 서점 안에 갤러리, 기념품 가게가 있는 등 개성 있는 큐레이션 방식이 인상 깊었어요. 시간의 흔적이 보이는 곳도 많았고요. 해당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책과 사람들이 있기도 해요. 특히 뉴욕에서 마주친 서점들은 제게 정말 큰 영감을 주었어요. 책을 넘어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설렜어요. 뉴욕의 서점을 방문하고 서서 책을 읽는 사람들 모습 자체가 멋지고 감동이었습니다. 물론 좋은 책들도 많이 발견하고 가져왔어요.
〈장성환 동문이 추천하는 뉴욕 서점 다섯 곳〉
1.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
2. 스트랜드 북스토어(Strand Book Store)
3. 스푼빌 앤 슈가타운 북스(Spoonbill & Sugartown Books)
4. 파워하우스 아레나(Powerhouse Arena)
5. 맥널리 잭슨(McNally Jackson Books)
현시점에서 장성환 님의 다음 목표 및 꿈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나중에 제가 은퇴하더라도 지금 만들고 있는 『스트리트 H』의 잡지와 인포그래픽 포스터가 지속적으로 발간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포스터의 해외 판매 및 판권 판매 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0여 종의 포스터들을 묶은 책 출간도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