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최지수

매력적인 일러스트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일러스트레이터 최지수 동문을 인터뷰했습니다. 최지수 님의 작업은 섬세한 디테일과 다채로운 색감의 조화가 돋보이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달됩니다. 매번 색다른 도전으로 일러스트의 반경을 넓혀 가는 최지수 님의 작업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최지수입니다. 공간과 여행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재미있는 일화나 좋았던 추억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사실 저는 하이픈* 창립 멤버예요. 친한 동기들과 함께 ‘하이픈’이라는 이름도 만들고, 로고도 만들었어요. 정식 소모임이 되기 위해서는 퓨휴전**에 참여해야 했는데, 학과 수업 작업물을 발전시켜서 참여했던 기억이 나요. 처음에는 5명으로 시작한 소모임이었는데 지금은 인원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기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로는 졸업 전시와 관련된 일이 떠올라요. 전시 준비를 한 학기 동안 하다가 설치 날에 도저히 못할 것 같아서 설치를 포기하고 졸업을 미뤘어요. 교수님으로부터 새벽까지 연락이 오고 다들 걱정해 주셨죠. 그해에는 졸업을 하지 못했지만, 다음 해에 무사히 졸업했고 지나고 보니 하나의 일화로 이야기하게 되었네요.

*하이픈 :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시각환경디자인 소모임

**퓨휴전 :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과에서 따로 열리던 소모임 전시회가 2010년 통합되어 열리게 된 전시회

학부 때의 배움과 작업 경험이 지금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때 만화 창작과를 전공하며 자연스럽게 만화가를 꿈꾸었습니다. 만화가는 탄탄한 구조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계속 생산하려면 자신의 자아가 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치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전시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처럼요. 작업을 하다 보니 제 자아가 만화를 지속적으로 그릴 만큼 강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만화가를 하기엔 자아가 부족할지 몰라도 시각적 매체를 다루는 일은 여전히 재밌고 즐거워서 학부 때 브랜딩이나 시각 디자인 작업을 많이 했어요. 여러 명이 작업을 주로 하다 보니 그 사이에서 서로 소통할 때 객관적인 지표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 생각과 의도를 시각적인 결과물을 통해 보여주며 상대방을 잘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클라이언트 작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때 학부에서 느꼈던 소통 방법과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렇다면 자신의 작업 스타일과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맞추시나요?

클라이언트가 있는 작업은 온전히 제 소유가 아니라는 생각을 우선 해요. 저는 그들의 간지러운 부분을 해결해 주는 사람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색감과 원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무엇일까, 이들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뭘까, 내 강점을 이 요소에 어떻게 합칠까…처럼 정답을 위한 이유를 찾아나갑니다. 나의 색깔을 담는 것이 물론 중요할 수도 있지만, 이유가 있는 작업을 만들어가는 것이 클라이언트 잡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클라이언트가 내준 숙제를 그들과 함께 조율하며 풀어나간다는 것이 맞겠네요.

저는 주어진 문제의 답을 찾아 주는 것을 좋아해서 클라이언트와의 작업도 재미있어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저의 색깔로만 해석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완전히 제 스타일이 아니지만,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냈을 때 얻은 성취감이 좋았을 때가 있거든요.

작가님의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학부생 때와 2017년쯤 처음 일러스트레이터로 시작했을 때는 디지털 장비를 다루는 것에 서툴다보니 모든 작업을 모눈종이에 손으로 직접 스케치를 하고 스캔한 후, 포토샵으로 채색하곤 했어요. 지금은 디지털 작업을 주로 하고 레이어를 많이 활용해서 작업합니다. 특히 클라이언트 작업의 경우 레이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각 레이어마다 활용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레이어에서 보이지 않는 뒷부분의 디테일까지도 작업을 하는 습관이 있어서 집을 짓듯이 한 층 한 층 레이어를 쌓아가면서 작업합니다.

작업물을 SNS에 아카이빙하실 때 최종 결과물 뿐 아니라 러프한 에스키스에서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까지 함께 게시하시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이런 과정을 담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작업 과정 장면을 올리는 건 예전부터 꾸준히 해왔어요. 과정이 날아가는 게 아까워 기록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하나하나 레이어를 쌓아가는 재미를 타인과 공유하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해부도나 청사진 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이것도 하나의 흥미로울 수 있는 콘텐츠가 될 것 같다고 느꼈어요. 또한 개인 계정에 작가적인 색을 드러내거나 관람자들과 소통하는 것에 서툰 편이에요. 그래서 과정 샷을 올리면 제 나름의 인간미를 보여주면서 나의 작가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 싶어 지금까지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에 작업을 업로드하고 이를 통해 소통과 연락이 이루어지지만, 초반에는 거의 페이스북이나 그라폴리오, 비핸스에 업로드했어요. ‘알고리즘 선택’을 통해 누군가의 눈에 들어오는 경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건축물을 활용한 일러스트를 그리실 때 건축물을 선별하는 기준과 방식이 궁금합니다.

건축과 관련된 작업을 할 때는 건축물 시설에 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3D로 하거나 사진으로 하면 굉장히 정확하지만, 손맛을 더한 감성적인 인상을 원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작업 시작에 앞서 조감도, 투시도, 구조도, ***스케치업 파일을 다 읽고 파악해야 해요. 처음에는 리서치 분량도 상당하고 어려워서 많이 헤매지만, 어느 단계 이상부터는 그 과정이 즐거워지기 시작해요. 하나하나 건축물에 대한 조각들을 프라모델 조립하듯 저만의 방법으로 조립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스케치업 : 트림블사의 3D 모델링 프로그램으로 주로 건축, 가구 설계, 인테리어 디자인 등에 사용된다.

루이비통 파리 시티 가이드북 작업과정

만화 <지역의 사생활 99> 속초 편을 출간하셨어요. 만화 작업과 관련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만화와 일러스트의 가장 큰 차이는 텍스트와 일러스트의 유기성 그리고 페이지 단위로 넘어가는 내러티브의 호흡이지 않을까 싶어요. [30살에 스페인]과  [지역의 사생활 99]은 큰 틀에서 보면 만화 형식을 이루고 있어요. 텍스트랑 이미지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서 페이지 단위로 서사가 넘어가면 다 만화지만, 그 안에 픽션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작업의 성향이 달라져요.  저는 만화를 먼저 배웠다 보니 표현방식에 대한 방법적인 어려움은 고민을 하다보면 해결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할 말이 없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특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픽션작업이 너무 오랜만이라 처음 감을 잡는데 오래 걸렸습니다. 어느 정도의 속도감으로 어느 분량의 이야기를 풀어내는게 어색함이 적을지, 그 호흡을 찾는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안해본 일을 해보는걸 좋아하는 편이라 저에게 가장 낯설은 동양판타지, sf판타지 두 장르를 혼합한 이야기에 도전했고 예상했던 대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만큼 즐거움도 컸습니다.

지역의 사생활99 책

최지수 님의 책 표지 작업을 보면 대칭적인 구조나 요소의 반복, 깊은 공간감 등이 돋보이는데요. 이러한 스타일을 선호하시는 이유, 그리고 지금의 작업 스타일을 구축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소설 작업을 할 때 소설의 내용을 최대한 표지에 많이 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같은 이야기를 소설은 300페이지 정도에 나눠 넣는데, 일러스트는 한 장으로 보여드려야 하니까요. 소설의 긴 내용을 어떻게 표지에 수납했을 때 보기 좋으면서도 정보 값을 유지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 보니 대칭 구조나 깊은 공간감이 느껴지는 레이아웃이 나오게 되었어요.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많은 이유가 동일 면적에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서이듯, 저도 건축 파사드같은 프레임을 만들어 많은 내용을 가시성 좋게 쌓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건축물을 보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빈 화면 안에다가 건물을 이렇게 뚝딱뚝딱 짓게 되는 것 같아요.

색감 같은 경우 기존에 정해진 브랜드의 색이 있다면 전체적인 마케팅 방향이나, 톤앤매너의 분위기를 보고 맞춰서 작업해요. 색을 사용할 때 특히 가장 적합한 조합을 맞춰가는 과정을 좋아하는데요. 여러 가지의 색상들이 가장 아름답게 배치되는 경우의 수가 무엇인지를 주변의 다른 색들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작업합니다.  큐브를 맞추듯이 작은 부분부터 잡아나가는 과정이 재밌어요. 색 조합의 수가 한정적일 때에는 가장 적합한 자리다 싶은 위치를 찾을 때까지 색을 쓰며 신경 씁니다.

기묘한 골동품 서점 책 표지

'CORNER FOR RENT'(매달 다른 가상의 장소의 모서리를 소개하는 광고형식의 무가지 엽서) 아이디어가 재미있었어요. 작업의 기획 과정부터 광고를 모집하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당시 작가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라, 개인 작업을 할 시간이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개인 작업을 효율적으로 하고 쓸모있는 아웃풋을 도출해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해서 꾸준히 만들 수 있는 시리즈를 그리기로 마음먹었어요. 한 달에 하나씩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달력이 떠올랐고, 매달 다른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로 했죠.

그런데 그냥 그림만 그리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조금 더 유쾌한 요소를 추가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렸을 적 미국 드라마에서 봤던 전단지나 광고 형식이 떠올랐어요. 저는 사람보다 공간을 자신있어해서 건물을 광고하기로 마음먹었죠. 매달 건물 하나나 방 하나를 그리기는 너무 힘드니까 부담없이 그릴 수 있는 코너(구석)를 택했어요. 매번 다른 매물을 판타지스럽고 감성적인 제 그림체로 그려내고, 간략한 설명만 덧붙이면 보는 사람이 마음껏 더 상상할 수 있는 거죠.

전단지 형식으로 작업하다보니 SNS에 업로드하는 것 뿐 아니라 오프라인으로도 배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어요. 연희동의 유어마인드, 망원동 아이다호처럼 그 당시 제 그림을 봐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갈 만한 곳에 무료 배치를 요청드렸죠. 직접 찾아가 매달 그림을 전달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여러모로 즐거운 경험으로 남아있답니다.

CORNER FOR RENT 작업

아디다스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를 위한 카펫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작하셨어요. 벽이 아닌 '바닥'에 거치되는 작업이어서 독톡하다고 생각되는데, 어떤 부분을 유의하며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클라이언트인 아디다스 측에서 작품을 바닥에 설치해 사람들이 오가며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체험형 그림을 만들고 싶다는 요청을 받아 설치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져간 시안은 두 가지였는데, 바닥을 농구 코트처럼 만들어서 스포츠 게임을 즐기듯 관람하는 아이디어는 아디다스에서 농구화를 만들지 않는 바람에 반려가 되었어요. 두 번째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는데, 건물을 내려다보면 건물 안이 커다란 박스처럼 보여서 오브제들이 큼직하게 놓여 있는 듯한 형태였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이끌려 작품에 함께 참여하고, 즐거움을 느끼도록 할 수 있을지에 가장 집중해서 작업했습니다.

아디다스 플래그십 스토어 이미지

루이비통의 파리 시티 가이드북과 파리 올림픽 스포츠 가이드북의 경우, 공간과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룬 작업입니다.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영국 출판사와 그림책 작업을 진행할 당시 사람 위주의 그림을 그린 적은 있었지만, 저는 자연물보다는 인공물을 더 선호해요. 직선적인 사물에서 투시가 잘못되면 더 알아보기 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건물이나 도시 경관은 조금 틀리거나 달라져도 사람들이 잘 읽어내지 못해요. 반면 사람이나 고양이, 강아지 같은 익숙한 개체는 비율이나 형태가 조금만 잘못되어도 바로 이상함을 느끼거든요. 인물을 그리는 것은 완벽하게 담아내야 할 정보값이 너무 많아서 조금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죠. 파리 올림픽 작업을 할 때도 체형, 생김새, 인종, 옷차림 하나하나까지 사람들이 읽게 될 정보들을 명확히 처리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인물 작업 속에서 제가 자신있는 직선적이고 도형적인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파리 올림픽 스포츠 가이드북

책표지,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잡지 삽화, 포스터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시다 보면 매체별로 특성이 확연히 다를 것 같아요. 각 매체에 따른 최지수 님의 구체적인 작업 방식의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매체마다 특성이 다 달라서 각자의 재미가 있어요. 책 표지같은 지류 작업을 주로 하다가, 디지털 출력을 하는 경우에는 굉장히 신나요. 제가 쓰고 싶은 색을 마음껏 쓸 수 있으니까요. 전광판이나 웹에 띄우는 작업과 실제로 인쇄하는 작업의 가장 큰 차이는 아무래도 색감이라고 생각해요. 빛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가지는 아름다움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RGB에서만 가능한 선명하고 예쁜 색감을 잘 활용하려고 노력해요.

두 번째로는 작품의 크기가 확실히 달라요. 창작자의 입장에서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림을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보는 게 많이 아쉬워요. 특히 제 작업의 경우는 디테일함이 특징이라 크게 봤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거든요. 작업물의 최종 출력이 핸드폰 화면인지, 쇼핑몰이나 거리의 미디어 월인지, 전시장의 그림 한 점인지에 따라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전부 달라져요. 사람들이 어떠한 간격과 어떠한 공간에서 내 그림을 보게 되느냐를 많이 염두에 두고 작업합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인상 깊은 작업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최근 5년간 한 작업 중에서는 안동에서 열린 세계문화유산 축전 작업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앞서 말했다시피 제 작업은 크게 봤을 때 강점이 있다고 느끼는데, 제 그림으로 판넬을 세워서 미로를 만들어서 큰 공간을 채워두고 사람들이 사이를 지나다니며 관람하는 형태였거든요. 전시공간과 어우러져 제 그림도 돋보일 수 있었던 좋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해요.

작업 과정도 기억에 남아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홀로 일하다 보면 종종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외로움을 느끼곤 해요. 그런데 세계문화유산 축전 작업에서는 설치팀, 디자인팀과 함께 일을 진행했고, 다양한 사람들과 왕래하며 공동 작업의 재미를 많이 느꼈어요. 안해본 일을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때 이후로 규모가 큰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이번 개인전도 스케일을 키워서 진행하게 되었답니다.

세계문화유산 축전

작가님에게 영향을 준 작가나, 롤모델이 있으실까요?

로렌조 마토티와 에드워드 호퍼의 작업을 좋아해요. 원래 초현실주의 화풍에 관심이 많아서 자연스레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사진 작가 중에서 정연두 작가님 작업도 되게 좋아하고, 만화책을 좋아해서 최근에 ‘던전밥’을 봤는데 너무 재밌더라구요. 이렇게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만화를 그리며 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지수 님이 일러스트레이션에 1순위로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내 작업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이다. 소유욕에 대한 다른 표현법이다.'라는 말을 자주 해요. 가지지 못한 것을 그렸을 때, 보는 것만으로도 풍족해지는 기분이 좋더라고요. 지금도 비슷한 것 같아요. 내가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그때그때 붙잡아두고 싶은 순간을 그림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무형적인 것들, 지나가는 추억들을 박제해서 그림으로 아카이빙했을 때 느껴지는 뿌듯함이 작업의 큰 원동력이 되거든요. 소중한 것들을 그림 속에 잘 담아내고, 제 그림을 보시는 분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세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실까요?

제가 학부생 때의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자 후배님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은, 대학교 때 들었던 수업이 했던 활동들이 나의 진로와 직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에요. 지금까지 들은 수업만을 바탕으로 진로를 고민하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라고 생각해요. 미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장래를 정할 때 현실적인 요인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걸 하면 내가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길을 선택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책이나 전시처럼 호흡이 긴 작업을 할 때, 초반 1/3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확신이 없어 헤매거나 고민하던 지점들도 1/3을 넘기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 해결되고, 절반을 넘기게 되면 더 이상 돌아갈 수가 없더라구요. 작업 초반에 많이 길을 잃더라도 어떤 작업이든 1/3까지는 묵묵히 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어느새 스스로 그 작업에 대한 재미와 매력을 찾아내는 본인을 발견할 수 있으실 거에요.

현 시점에서 최지수 님의 다음 목표 및 꿈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내가 언제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육체적인 한계나 트렌드적인 한계일 수도 있고, 언젠가는 그림을 더 이상 그리지 못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죠. 역설적이지만,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그림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림 그리기가 정말 싫은데도 여건이 안 돼서, 할 수 있는 게 그림 뿐이라 억지로 그리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작가 인생의 호상을 바란다고나 할까요. 되도록 오래오래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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