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그래픽스, 문장현
제너럴그래픽스 대표 문장현 동문을 인터뷰했습니다. 문장현 동문은 오랜 기간 디자인 업계에 몸담으며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 제너럴그래픽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디자이너로서 자리매김하기까지 거쳐온 과정과 생각들을 문장현 동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문장현 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홍익시디 소식지〉 구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91학번 문장현입니다. 그래픽디자인을 하고요. 정확히 세보진 않았는데 25년 정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너럴그래픽스를 운영합니다.
문장현 님의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시각디자인과 재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저학년 때는 조형 연습 수업이 많았어요. 평면이나 입체로 조형 요소를 반복적으로 밀도 있게 배열하는 내용의 수업이다 보니 어째 좀 재미가 없었어요. 대학에 오면 입시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본격적인 디자인을 할 줄 알았는데 실망스럽더라고요. 그러다 2학년 때 안상수 선생님의 타이포그라피 수업을 들었는데, 여러모로 인상적이었어요. 일단 학생들을 압도하는 강력한 언어와 단호한 태도가 남달랐고, 타이포그라피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계셨어요. 예를 들면, ‘그래픽디자인은 타이포그라피다’와 같은. 당시에는 바짝 긴장해서 가장 열심히 들은 수업이었어요.
대학 생활 당시 하고 싶으셨던 디자인은 어떤 디자인이었는지, 현재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1학년 때는 두 학기 다 학사경고를 받을 정도로 학교에 적응을 못 했어요. 그래서인지 학교 다닐 때 ‘이런 게 디자인이다’라는 개념도 없었어요. 수업을 따라가는 데 급급했죠. 고학년이 되면서 친구들이 ‘나는 영상을 할 거야’, ‘난 광고를 할 거야‘, ‘나는 편집디자인을 할 거야’ 등등 대부분 본인이 가고 싶은 길을 정했는데, 저는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오랫동안 방황했죠. 제가 대학 시절에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낮았고 하고 싶은 디자인이 뚜렷하지 않았기에 질문에 맞는 답변은 좀 어렵네요. 대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분야를 선택하고 일하게 되었는지 얘기해 보겠습니다.
졸업을 한 학기 정도 앞두고, 한창 취업 준비를 하던 시기에 IMF가 터졌어요. 대기업에 합격한 친구들도 취업이 취소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고요. 당시에 웹 디자인 분야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면서 그나마 활로가 생겼었어요. 지금 보면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아주 단순한 초기 웹 형태인데, 기업들의 수요가 많아서 전문 에이전시가 많이 생기던 시기였어요. 당시 학교에서는 늘 시대를 앞서가시던 안상수 선생님이 4학년 편집디자인 수업에 책과 웹을 동시에 다루셨습니다. 웹 디자인은 다분히 기술을 중심에 두고 명명한 분야 같은데, 실제 다루는 내용을 보면 콘텐츠를 편집하는 디자인이죠. 해당 수업을 통해서 콘텐츠를 다루는 편집디자인에 조금 관심이 생겼습니다. 당시 친구들이 많이 선택하던 광고나 영상 그리고 CI보다 뭔가 내 기질과 맞는 느낌이 들었어요.
시간이 흘러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 뚜렷하지 않은 상태로 졸업을 앞두게 되었고, 일단은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금은 없어진, 이동통신 회사 중의 한 곳에 면접을 봤어요. 어색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강남역 근처 빌딩으로 면접을 보러 갔는데 분위기가 너무 싫은 거예요. 아주 넓은 한 층의 공간이 구분없이 다 터져 있었는데 천장에는 부서 사인이 줄 맞춰 매달려 있고, 일정한 간격의 파티션이 빼곡하게 들어찬 실내는 담배 연기로 자욱했어요. 그날 소위 심층 면접 형식으로 팀원 전체와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장소를 식당으로 옮겨 식사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음식과 함께 술을 시키더니 건배하면서 기업을 위한 응원가 같은 구호를 외치는 거예요. 그것도 점심시간에 말이죠. 그런 분위기가 너무 어색해서 도저히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분야를 결정하지 못해서 불안한 마음이 커졌고, 학업을 좀 더 연장해서라도 길을 찾아야겠다 싶어서 대학원 시험을 봤어요. 지금처럼 정원이 많지 않고 경쟁률도 높았는데 다행히 합격했죠.
대학원을 다니면서는 학부 시절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작업을 하고 분야를 모색한 것 같아요. 선배의 권유로 학교 디자인연구실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주로 학교 홍보물과 교재를 디자인하는 부서였습니다. 실무 경험이 전혀 없어서 일머리가 없던 저는 선배로부터 이런저런 자극과 가르침을 받으면서 늦게나마 무언가 해보기 시작했어요. 대학원 수업에서 다루는 매체의 편집장도 맡아서 학부 때와는 다르게 주도적으로 작업을 진행해 봤어요. 미학을 전공하는 다른 과 대학원생들과 협업으로 대학원 신문 디자인을 했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전시와 홍보물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편집디자인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결국 대학원을 수료하고 편집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회사에 입사해서 밤낮없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한 회사에서 일하시다가 제너럴그래픽스라는 본인만의 스튜디오로 독립하셨어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다니던 에이전시는 업계에서 가장 큰 규모였어요. 질적으로도 수준이 높은, 당시에 꽤 유명한 회사였습니다. 솜씨 좋은 선후배 디자이너가 많아서 늘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고요.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작은 목표를 세웠는데, 바로 디렉터가 되는 것이었어요. 노력과 운이 따라서 몇 년 후 디렉터가 되었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업무의 양이 너무 많아서 조금 지쳐갔고 디자인 방법적으로도 매너리즘이 생겼어요. 그리고 고용된 입장이다 보니 의사결정에 있어 제 생각이 반영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요. 점점 나이가 들면서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독립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내 스튜디오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언젠가 독립해야지’ 했는데 경험도 꽤 쌓였고, 시기가 돼서 40대 초반에 독립을 결심하게 되었죠.
또 두 생활에 차이가 있다면 무엇을 가장 크게 느끼시는지 궁금해요.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어요. 에이전시에 다닐 때 나름 즐기면서 열심히 했는데,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 때는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독립해서 내 스튜디오를 갖게 되면 발걸음이 훨씬 가볍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어렵고 힘든 점이 많았어요. 독립하면 아무래도 회사를 소규모로 운영하게 되니까 인력이 부족해져서 작업, 미팅, 회계, 심지어 청소도 직접 해야 해요.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독립 초기에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의사결정 면에서 자유로워진 대신 모든 면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제너럴그래픽스의 작업 크레딧을 보면, 이제는 문장현님이 직접 디자인하기보다 주로 아트디렉팅을 맡으시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와 달리 프로젝트의 아트디렉터로서 가장 신경 써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디렉터로서 스텝들과 함께 프로젝트의 지향점, 즉 기준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디렉터는 프로젝트의 방향을 리드해야 합니다. 크고 작은 기준을 잘 마련해야 프로젝트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마감이 흔들리지 않거든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선 클라이언트가 일을 의뢰한 사정을 충분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에 프로젝트의 지향점이 대부분 존재합니다. 그래서인지 클라이언트와의 소통 능력이 중요하게 다가와요. 소통은 늘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디자이너와 잘 소통하는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되면 작업 과정도 순조롭더라고요. 저는 프로젝트 팀의 리더로서 크고 작은 기준을 다루며 작업을 디렉팅합니다. 스텝들과 아이디어 찾기에 골몰하다 보면 작업을 풀어갈 수 있는 작은 단서가 나오곤 하는데, 디렉터는 빠른 판단으로 캐치해서 프로젝트 전반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맥락화합니다. 스텝들의 능력을 북돋는 것도 중요하죠. 저도 이 부분은 아직 많이 부족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너럴그래픽스의 브랜딩, 그래픽 작업을 보면 타이포그라피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프로젝트에 맞는 서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시각물의 방향을 확고하게 설정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서체를 수집하고 디자인에 적용하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특별히 있나요?
그래픽디자인에 있어 타이포그라피의 비중은 상당합니다. 그런 타이포그라피의 시작은 언제나 ‘서체의 선택’이죠.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그리고 스튜디오 스텝들에게 늘 강조해서 얘기해 왔습니다. ‘서체의 선택’이 타이포그라피의 품질을 좌우한다고 말이죠. 서체를 선택해서 적용하는 것에 특별한 노하우는 없습니다. 다만 꾸준한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어요. 프로젝트에 걸맞은 서체를 고르려면 우선 ‘보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서체의 세부 디테일과 함께 조판 형태도 살펴봐야 하고, 더불어 많이 보고 많이 다뤄야 합니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려면 인내심과 체력도 필요하죠. 당대의 디자이너들에게 선택을 많이 받는 서체를 체크해서 사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희 스튜디오에서는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능한 새로운 서체를 찾아서 매칭합니다. 특히 영문 서체는 다른 프로젝트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를 찾아 후보군을 만들고 최종 결정된 서체를 구입해서 적용합니다. 최근에는 서체 디자인 도구와 시장성 향상 등 이런저런 이유로 한글도 다양하게 출시되면서 선택의 폭이 꽤 넓어진 것 같아요. 이제 서체를 고르는 기준도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고요. 다양하게 형태를 변주하는 디자이너들의 시도가 소비자들에게 수용되고 있는 것 같고 결과적으로 보편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봅니다. 더불어 타이포그라피의 규칙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조금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까지 많은 클라이언트와 작업을 해오셨을 텐데, 가장 인상깊었던 작업이나 클라이언트가 궁금합니다.
프로젝트나 클라이언트의 인상은 두 가지로 남는 것 같아요. 나쁜 기억과 좋은 기억. 후자는 드물어서 잊을 수가 없어요. 왜 그렇게 좋은 기억이 별로 없나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요구하는 클라이언트와 수용하는 디자이너의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겠죠. 하지만 받아들이는 제 태도에도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되돌아보게 됩니다. 좀 더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했으면 좋았을 것 같네요.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로는 ‘서울 궁궐 사이니지’ 작업을 꼽고 싶어요. 대상이 문화재다 보니 절차도 복잡했고 여러 사람과 기관이 관여한 장기간의 공공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 국내 사이니지 디자인 수준은 천차만별이었어요. 거칠게 보면 상업영역의 사이니지는 꽤 높은 수준이었지만, 공공영역은 취약한 편이었습니다. 수준 높은 디자이너들이 공공영역의 사이니지 작업에 참여하기에는 경제적, 제도적, 관습적 문제가 많았어요. ‘서울 궁궐 사이니지’ 프로젝트는 우여곡절이 많아서 그 스토리를 기록해 책으로도 만들었어요. 사이니지 디자인 자체는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어서 아쉬움이 남지만, 좋은 기억도 훨씬 많이 있는 프로젝트예요. 특히 함께한 클라이언트, 협력사와의 협업이 인상적이었어요. 형식적인 협업이 아니라 정말 협업다운 협업이었죠.
클라이언트 없이 제너럴그래픽스만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신가요?
디자인 과정에 관련된 콘텐츠를 발행하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입니다. 아직 계획 단계라서 자세히는 말할 수는 없지만 사소한 것, 작고 디테일한 것을 다루고 싶어요. 기본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에 직접적이고 과감한 표현 방식을 적용해 볼 생각입니다. 익숙해진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고, 스튜디오 자체의 브랜딩이기도 한 것이죠. 아직 구체적으로 실천을 못 해서 더 말하긴 좀 부끄럽네요. 하지만 자꾸 떠들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테니까요.
학교를 졸업한 후 첫 직장 생활을 기업, 혹은 스튜디오 중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건네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서 본인의 성향을 따져보고 선택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본인이 작업 자체에 매력을 느껴서 직접 모든 과정을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스튜디오가 좀 더 적합하겠죠. 물론 프로젝트 전체를 관장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요.
한편 본인이 규모가 있는 조직 내에서 분야가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아마 기업이 성향에 더 맞겠죠. 하지만 요즘은 기업의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스튜디오 못지않게 직접 작업을 진행하는 곳도 많습니다. 또 스튜디오 중에도 기업 못지않게 규모를 키워 직능별로 조직화 된 곳도 있지요.
결국 어떤 곳에 속하던 부딪혀서 경험해야 알 수 있습니다.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고 준비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해요. 덧붙여서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디자이너의 성장 목표를 ‘제너럴리스트' 로 잡아야 한다, 혹은 나만의 특장점을 가지고 있는 ‘스페셜리스트'로 잡아야 한다 등 많은 의견이 있어요. 어떤 쪽에 조금 더 동의하시나요?
저는 순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긍정적 의미의 '제너럴리스트'가 되려면 먼저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의 분야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되지 못하면 제너럴리스트적인 시각이 생길까 하는 의구심이 있거든요. 제너럴(General)이란 단어의 의미에는 '장군'이라는 뜻도 있죠. 병사와 장교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 거예요. 만약 제너럴리스트를 꿈꾼다면, 선택한 분야에 정착해서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통찰력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제너럴리스트적인 시각과 능력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래서일까요, 디자인 현장에서 스페셜리스트는 접할 수 있지만 제너럴리스트다운 디자이너는 드문 것 같습니다. 본인에게 제너럴리스트의 롤 모델이 있다면 성장 목표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되겠네요.
디자인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의 공통적인 고민 중 하나는 디자이너의 직업적인 수명에 대한 것인 것 같아요. 한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멘토로서, 혹은 한 분야의 시니어 선배로서 어떻게 하면 디자이너로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지 의견이 궁금합니다.
제가 답하기에는 좀 과분한 질문이네요. 저는 지금 좀 정체된 상태라 성장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에요. 여전히 성장에 대한 갈증을 느낍니다. 어떤 때는 한 뼘도 나아가지 못해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어떻게 지금까지 디자인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어떤 결핍이 에너지가 되어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되돌아보기에는 아직 할 일이 많죠. 해야 할 일이 계속 쌓이는 중입니다.
디자이너의 수명 관련해서 학생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한다면 건강을 관리하는 습관을 지니라는 겁니다. 젊을 때는 별 필요를 못 느끼겠지만요. 나이가 들면서 시력을 포함한 모든 신체적 능력이 떨어집니다.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현저하게 줄어들죠. 모든 이들에게 다가올 현실입니다. 부디 미래의 체력을 미리 끌어다가 소모하지 마세요.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작업하는 습관을 갖기를 바랍니다. 저도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숙제입니다.
그러면 최근 일하시면서 스스로 한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하게 된 순간이 있으신가요?
사실 그런 순간은 없었던 것 같아요. 늘 한계를 느끼는... (웃음)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문장현 님만의 방법이나 비결이 있나요? 또 빠르게 변화하는 디자인 트렌드에 대한 문장현 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저만의 방법이나 비결은 없어요. 다만 디자인 트렌드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 예전과 달리 관심이 생겼어요. 전에는 시대와 상관없이 가치를 지닌, 소위 ‘타임리스’한 디자인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브랜드를 다루다 보니 당대에 소비되는 디자인의 경향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저보다 어린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유심히 봐요.
이런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죠. 동년배나 선배 디자이너들과 만나 대화하다 보면 트렌디한 디자인이나 유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대부분 본인의 전성기를 기준으로 두고 저 작업은 ‘좀 이상해, 잘 모르겠어, 그냥 별로야’ 이렇게 얘기하죠. 그때 느꼈어요. ‘우리가 과거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었었지’ 하고요. 과거에도 선배들은 후배들의 작업을 낯설어하고, 후배들은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기존 스타일을 전복하고 싶어 했지요. 재밌는 건 그렇게 비판받던 후배 세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목받고, 그들의 작업이 주류가 되는 거죠. 아마 이런 흐름이 반복되었을 거예요.
디자인 트렌드도 비슷하게 반복되는 면이 있죠. 새로운 스타일이 나오고, 낯설어하다가 따라 하고, 유행하면서 보편적인 스타일이 되고, 흔해지고 많아지면서 새로운 스타일에 밀려 사라지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보면, 이미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있지만 약간 어설퍼도 곧 주류가 될 거라는 확신이 가는 작업이 있죠. 요즘 저는 그들이 만드는 흐름을 살펴보면서 제가 가야 할 방향을 떠올려 봅니다.
예전의 인터뷰에서 ‘의뢰받은 일에 스튜디오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걸 보았습니다. 이 말은 곧 ‘디자이너로서 운신의 폭을 넓혀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고의 유연함을 어떻게 유지하고 계시나요? 또, 이러한 ‘유연함'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다수의 사람이 퀄리티가 높다고 느낄 수준의 결과물을 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죠. 그러다 보니 검증된 방법, 실패가 적은 방법을 쓰고 싶은 유혹이 있는 거예요. 저도 에이전시에서 일할 때, 작업량이 많아지면서 빠른 시간에 퀄리티를 내기 위해 선배들이 구축해 놓은 스타일을 흉내 내기에 급급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스타일이 익숙해지면서 작업 속도가 빨라지니 실력이 늘었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문제는 비슷한 스타일로 서로 다른 클라이언트 작업을 처리한다는 것이죠.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클라이언트인데 결과물이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요. 일정한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은 효율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것이 획일화되지 않고 맞춤형이 될 수 있도록 다져 나가야 합니다. 말이 쉽지, 클라이언트에 맞게 각기 다른 결과물을 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요.
결과물을 구축하는 방식은 검증된 몇 가지 방법을 유지하되, 겉으로 드러나는 스타일은 클라이언트의 기호에 맞게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법론은 일정하더라도 스타일을 내는 시각적 장치는 다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거예요. 여러 상황에 다양하게 변용할 수 있는 시각적 경우의 수를 마련해 둔다면, 자기 복제를 어느 정도 피하면서 지속적으로 디자인을 해갈 수 있겠죠. 그러다 보니 결국 ‘부지런함’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고요.
그런 종류의 ‘부지런함’이라면 결국 창의력의 속성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창의력(Creativity)이라는 말이 저한테는 제일 부담스러운 단어에요. 상대적으로 저는 크리에이티브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창의력을 기반으로 꾸준히 작업을 내는 디자이너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크리에이티브에 더해 익숙한 방법론과 테크닉으로 훈련되어 있어요. 직업인으로서 디자이너는 적정량의 창의력을 안정되게 실현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직업 디자이너로 활동하신 지 25년 정도 되셨는데, 오랜 시간 동안 디자인계에 몸담으며 몸소 느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스타일적인 면을 볼 때, 디자이너가 어디에서 누구의 영향을 받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소위 디자인 선진국의 스타 디자이너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주로 미국, 일본, 영국,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들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비슷한 스타일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지요. 하지만 현재는 유행을 시킬만큼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특정 국가나 디자이너를 찾아보기 어렵죠. 실시간으로 이미지와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니 국가와 상관없이 서로 간에 느슨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유행하는 스타일의 주기가 짧아서 많은 변주가 순식간에 일어나기도 하고요.
둘째는 유명세에 대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순수하게 디자인 작업 자체만으로는 평가받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기회도 적었다고 생각돼요. 학벌은 유명한 디자이너의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어떤 회사에 다녔는지도 영향을 미쳤죠. 하지만 현재는 어떤 ‘작업’을 했는지가 유명세를 형성하는 거의 모든 조건입니다. 이 부분은 확실히 진보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런 변화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빠른 시간에 유명세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런 사례를 접하면서 젊은 세대들은 유명세를 얻기위해 큰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디자인 자체도 단기간에 관심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테크닉이 발전하는 듯하고요. 유명해지면 여러 가지로 유리한 면이 있겠죠. 돈을 벌기도 좋고요. 집단에 소속되지 않고 개별적인 삶을 지향할 수도 있죠. 다만 빨리 유명해진 만큼 실력을 검증받거나 유지해야 할 시간이 길어집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면 충분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문장현 님의 디자인관을 변화시켰거나 성장하게 해주었던 변화, 계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킬 만큼 특정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단, 평소에 조금씩 쌓여가던 작은 생각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구체화되어 확신을 하게 만들고 그것이 결국 변화의 에너지가 되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형태적으로 엄격한, 완성도 높은 스타일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특정 스타일이 우월하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좋아하는, 받아들이는 폭이 좀 넓어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영문 서체를 선택할 때, 과거에는 익숙한 완성도를 따졌습니다.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보편적으로 완성도를 갖춘 서체를 선호했어요. 타이포그라피도 기능적 완성도가 높아야 아름답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현재는 ‘의도를 품은 형태’를 지닌 서체를 선호합니다. 의도가 잘 구현되었을 때, 완성도가 높고 아름답다고 느껴집니다. 타이포그라피는 시도가 성공적일 때 좋아 보이더군요. 그것이 실패한 경우는 매우 추해 보입니다. 오랜 기간 디자이너로 살면서 선택의 기준, 아름다움의 척도가 서서히 변한 듯합니다.
2014년 인터뷰에서 최근 근황을 묻는 말에 대해 '뚜렷한 방향은 아직 찾지 못했고 방황 중'이라고 답변하셨어요. 9년이 지난 지금, 이때와 비교한 최근 근황이 궁금해요.
그때 말한 ‘방황’이라는 게 아마 주력할 무언가를 찾고 있다, 이런 의미였던 것 같아요.그 사이 제가 디자인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 스스로 변한 것이라기보다는 환경이 바뀌었고 걸맞게 방향을 수정한 셈입니다. 저는 타이포그라피에 흥미를 느꼈고, 편집디자인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기 때문에 책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책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페이지네이션 위에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그리고 지우면서 작업하는 것을 즐겼어요. 단순 레이아웃을 넘어 책의 글과 이미지에 깊게 관여하면서, 작업 전체를 컨트롤해 나가는 디렉터로서 기업 홍보에 관련된 많은 책을 만들어 왔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기업 환경이 변했고 홍보에서 브랜딩으로, 마케팅에서 브랜딩으로 중심축이 이동했습니다. 기업 전체를 홍보하던 것에서 브랜딩의 일환으로 인쇄물을 만드는 환경이 되었지요. 하는 일은 과거와 비슷해도 이제는 브랜딩 디자인을 간판으로 걸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게다가 요즘은 기업이 더 이상 책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아요.
저는 원래 브랜드 관련 디자인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요. 그 분야의 디자인이 뭔가 과시하고 과장하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관심을 두지 않았죠. 근래에 많은 사람이 하도 브랜드를 강조하니까 궁금하기도 하고 확인도 하고 싶어졌어요. 가장 좋은 방법은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는 거죠. 관련 포트폴리오가 없던 저희는 최근 몇 년간 브랜딩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큰 노력을 했습니다. 마침내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과거와 달라진 분야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이제 브랜딩 디자인은 그 중요성 때문인지 매우 통합적인 방식으로 발전해 가고 있었습니다. 디자인의 거의 모든 영역이 브랜딩으로 녹아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또한 과거에 비해 과장과 과시가 많이 사라지고 진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갖고 있던 브랜딩 디자인에 대한 편견과 우려가 많이 사라졌고, 관심과 재미를 갖고 브랜드 관련 프로젝트를 마주하게 되었어요. 이제 방황은 마치고 브랜드가 걸맞은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나름의 접근을 시도해 보려 합니다.
현 시점에서 문장현 님의 다음 목표 및 꿈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 목표는 디자인 작업을 못 할 때까지 지속하는 것입니다. 아직 노인은 아니지만, 한창 젊을 때보다 이런저런 가능성이 크게 줄었어요. 몇 년 전까지도 진로를 고민했었는데 나이가 드니 대부분 불가능에 가까워집니다. 이젠 오롯이 스튜디오와 프로젝트만 남은 거예요. 하지만, 오히려 홀가분해요. ‘작업만 하면 되는’ 목표가 분명해진 거죠. 건강 관리도 하고, 꾸준하게 일해서 나의 마지막까지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사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70대 현역 디자이너들이 꽤 있죠. 최근 작고한 나카조 마사요시 씨 같은 경우는 시세이도의 아트디렉터로서 상업 디자인의 현장에서 아주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그가 70대에 작업한 결과물을 보면 그 수준에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작년에 84세의 나이로 작고한 미세이 이야케도 패션디자이너로 유명하지만, 분야를 넘나드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2019년에 고인이 된 빔 크로우웰 선생도 90세가 넘도록 왕성하게 활동하신 걸로 압니다. 국내에도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속해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많이 있죠. 디자이너는 있긴 하지만 좀 드문 편입니다. 사실 작업을 지속하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당연한 책무인데 목표라고 하니 좀 우습네요. 경쟁이 치열한 환경 때문인지 어느 정도 지위나 명예가 생기면 허탈감이 생겨서 디자인 작업을 손에서 놓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주변의 동료들과 함께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